【6.20 세계 난민의 날】 교육은 난민에게도 미래를 열어줍니다

2026-06-19

피터 오켈로(Peter Okelo) 씨


1992년, 여섯 살이었던 피터 오켈로(Peter Okelo) 씨가 도착한 케냐의 카쿠마 난민캠프는 “사막에 나무만 조금 있을 뿐, 물도 식량도 텐트도 전기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16년 동안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며 교육의 기회를 얻었고, 이후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히로시마대학교에서 평화구축을 연구하며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피터 씨에게 난민으로 살아온 경험과 교육의 의미, 그리고 남수단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Q. 어디에서 태어나셨나요?

저는 1986년, 아직 남수단과 수단이 분리되기 전의 수단 남부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내전이 격화되면서 가족은 에티오피아 서부 감벨라 지역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에티오피아에서도 내전이 발생하면서 난민캠프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1년 무렵 우리는 다시 수단으로 돌아갔고, 몇 달에 걸친 여정 끝에 케냐로 향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형, 여동생과 함께 이동했지만, 케냐 북부 로키초지오에 도착하기 전까지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거나 가족과 헤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케냐에 도착한 뒤에는 몇 달 동안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쳤고, 그 후 카쿠마로 향하는 트럭에 실려 갔습니다. 트럭에서 내려진 곳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텐트도, 물도, 식량도, 전기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후 유엔난민기구(UNHCR)가 담요와 모기장 등을 지원했고, 집을 지을 수 있는 자재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Q.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거군요?

네. 하지만 처음부터 학교 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업은 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칠판이 날아가 버려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뛰어가 칠판을 잡아오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엔과 NGO의 지원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교육 환경도 점차 나아졌습니다. 


저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를 계속했고, 2008년 카쿠마 난민캠프에서 중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Q. 그 이후에는 어떤 길을 걸으셨나요?

장학금을 받아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대학에 진학했고, 2010년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은 직업훈련을 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언론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다다브 난민캠프의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국민투표를 통해 남수단이 독립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버스를 타고 새롭게 탄생한 나라의 수도 주바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제 아버지는 2005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남수단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은 저희 가족에게도 매우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독립 이후의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수단과 케냐, 서구권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언어와 문화가 충돌했고, 차별과 연고주의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결국 갈등은 다시 격화되었고, 2013년 말에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 역시 다시 케냐로 돌아가 언론 활동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Q.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남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으로 일했습니다. 


그 경험을 계기로 평화구축과 개발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현재는 히로시마대학교에서 평화구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원자폭탄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도시가 어떻게 재건될 수 있었는지 배우고 있으며, 이 경험을 언젠가 남수단의 발전에도 활용하고 싶습니다. 

UN에서 일했었던 당시


Q. 난민캠프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난민캠프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주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난민에게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제3국에 정착하는 길, 그리고 현재 머무는 나라에 정착하는 길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교육은 중요합니다. 교육은 어디에서든 여러분을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교육은 난민에게도 미래를 열어줍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Q.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난민 생활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희망은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강한 분이셨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어머니는 2023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어머니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계속 응원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저도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저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합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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